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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사전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 - 커피의 역사, 카푸치노의 어원

by mudbrick 2017.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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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보통사람의 금이며, 그래서 커피는 금처럼 모든 사람에게 호사스러운 느낌과 고귀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셰이크 아브드--카디르

(Sheikh' Abd-al-Kadir)


 

매일 세계에서 20 이상의 커피를 마시는데, 이것은 올림픽 규격 수영장 300개를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이다. 커피는 글로벌 산업이며 석유에 이어 째로 많은 원자재 기반 상품이다. 알아두면 좋은 커피에 대한 상식을 알아보자.

 

 

1. 유래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200여년 흥분성 음료가 없던 때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졸음을 쫓으려 애쓰고 있었는데, 호기심 많은 염소 떼와 주의 깊 주인인 칼리드(Khalid)라는 아랍인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버린 단순한 물질을 발견했다고 한다. 

 

염소들이 에티오피아의 산중턱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을 칼리드는 염소들이 특정한 열매를 먹고 나서 흥분해 날뛰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열매를 그냥 먹는 대신 끓여서 -까흐와(al-qahwa) 만들어 먹었다.




 

2. 전파


예멘의 수피교도들은 현대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졸음을 쫓기위해 -까흐와를 마셨다. 음료 덕분에 그들은 늦은 시간에도 시크르(Thikr, 알라를 기리는 기도) 하는 동안 정신을 집중할 있었다. 

 

이슬람 16세기까지 커피콩 재배를 철저히 독점하며 커피콩 종자의 유출을 막기 위해 엄격히 관리했다. 커피콩 농장에 외부인의 출입은 당연히 금지되었고 커피콩을 불가피하게 유출해야 때는 종자가 싹을 틔우지 못하도록 찌거나 구워서 내보냈다. 그러나 수도승 사람이 커피콩 씨앗을 몰래 유출했고 그로써 커피는 널리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커피는 여행자, 순례자, 상인들에 의해 다른 이슬람권으로 퍼져나가다 15세기 후반 메카와 터키에, 16세기에 카이로에 이르렀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커피가 북아프리카 이집트와의 무역을 통해 유럽에 들어온 후인 1645 베네치아 나타났다.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런던의 에드워드 로이즈 커피하우스는 상인과 선주를 위한 만남의 장소였다. 커피하우스는 오늘날 (Pub) 전신 되었다. 커피하우스에서 사람들은 정치문제를 논하곤 했고, 자유주의운동이 일어난 근거지기도 하다.

 

1650 영국에 처음으로 커피를 들여온 사람은 파스카 로제(Pasqua Rosee)라는 터키인 무역상이었는데, 그는 런던 롬바르드 스트리트 조지 야드의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팔았다. 

 

8 설터니스 헤드라는 다른 커피하우스가 콘힐에서 문을 열었다.오늘날 유명한 보험회사인 런던의 로이즈는 원래는 에드워드 로이즈 커피하우스라는 커피숍이었다. 

 

1700년이 되자 런던에 500개의 커피하우스가 있었고, 영국 전체로는 거의 3천개가 있었다. 커피 하우스는 "페니 대학"이라고 불렸는데, 까닭은 커피 값에 당대 뛰어난 지성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그들과 대화를 나눌 있었기 때문이다. 

 


 


3. 카푸치노


유럽에서 커피를 마시는 방법은 대체로 음료의 전통적인 이슬람식 조리법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조리법에 따르면, 커피가루, 설탕, 물을 함께 섞어 끓여야 하는데, 거르지 않았기 때문에 컵에 커피 찌꺼기가 남았다. 

 

1683년에 커피를 제조하고 마시는 새로운 방법이 발견되었으며, 사람들은 이렇게 만든 커피를 커피하우스에서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카푸치노는 1683 빈을 포위한 터키군에 맞서 싸우던, 카푸친 수도회 성직자인 마르코 다비아노(Marco d'Aviano)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터키군이 물러간 다음 사람들은 버려진 터키 커피 자루에서 나온 원두로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가 그들 입맛에 너무 진하다는 것을 알게 사람들은 커피에 크림과 꿀을 섞었다. 때문에 커피색이 갈색으로 변하게 되면서 카푸친 수도회 수사가 입는 코트의 색과 비슷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르코 다비아노를 기리는 뜻에서 커피에 '카푸치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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